먼저 Savoring Christ 를 소개함으로써 시작하겠습니다.

Savoring Christ 는 미국 버지니아 비엔나에 있는 God’s Will 교회의 블로그 사역입니다.

Gods Will 교회는 제2의 종교개혁과 스펄전과 같은 시대를 꿈꾸며 2008년 9월 창립한 교회입니다.
복음 외에는 설립의 동기와 목적을 설명할 수 없고, 복음 외에는 방향성과 비전이 없는 교회입니다.
Gods Will 교회는 요한복음 15:7의 말씀을 믿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믿는 자는 주님안에 머물러 있으며, 주님의 말씀이 그의 안에 있게 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드러나게 될 복음의 영광이요, 최후에 교회가 누리게될 축복이라 Gods Will 은 믿습니다.

교회 웹사이트에는 주일 설교 영상이 매주 업데이트되고 있으므로, 많은 방문 부탁드립니다.

God’s Will 교회 주소: www.godspass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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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준비 중에 있습니다. 준비가 끝나는데로, www.savoringchrist.wordpress.com 에 올려졌던 포스트들은
새로운 블로그로 옮겨질 예정입니다.

블로그의 새 주소: www.savoringchrist.com

또한 유튜브에는 동영상들이 번역되어짐과 같이 업데이트 되어질 예정이므로, 많은 방문과 답글 부탁드립니다.
유튜브 주소 : www.youtube.com/user/savoringchrist

-Savoring Christ

 

 

출처-By John Piper. © Desiring God. Website: desiringGod.org
이 설교 시리즈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You must be born again” 설교 시리즈의 발췌 동영상을 한글 자막 처리해서 올리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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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나는 오래된 죄의 성의 사는 사람 이었고, 내 행실을 의지 했었네

하루는 나팔수 가 와서 나의 닫혀진 문을 열라고 명령 했었네.

나는 분노에 사로잡혀 그는 절대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소리쳤다네.

그런 내게 훌륭하고 매력적인 분이, 애정으로 가득 찬 얼굴로; 못 이 박히셨던 흉터가 새겨진 손으로, 못 자국이 새겨진 발로 나를 찾아 오셨네.

 

 

 

 

그는 손에 드신 십자가로 내 문을 두드리셨네-

 처음 일격에 나의 편견 과 혐오감의 문은 흔들렸고

 두 번째 일격에는 더욱 더 진동을 했고

 세 번째 일격에 그 문은 무너지면서

 그 분은 들어 오셨다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네, “일어나라, 내가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했으니, 두 발을 딛고 일어서라

 

그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만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흐르는 그 은혜만이,

나의 애착과 성향을 바꾸시고, 나의 영혼을 단단히 붙잡으신다네

 

스펄존 목사님의 설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중에서.

 

원문 출처: www.gracegem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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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집된 설교 동영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교 본문 중에서 편집된 동영상과 관련된 파트를 번역해서 올렸습니다.

 

나의 소망: 동요시키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소망을 주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거듭남에 대한 설교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이 가르침이 얼마나 사람들을 동요시킬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무척 조심하고 싶습니다. 연약하고 가냘픈 영혼들에게 불필요한 압박을 주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또한, 영적인 삶을, 도덕과 종교적인 삶으로 오해한 자들에게 거짓된 소망을 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 설교를 하면서 영원한 영혼에 관한 것을 다룬다는 것을 요즘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능력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만이 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에베소서 2:4-5 쓰여 있는 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은 사랑의 풍성함을 더 크게 드러내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진실 안에 구주께서 높임 받으실 때 은혜를 주시는 것을 말입니다.

그게 바로 제 소망입니다: 바로 이 시리즈가 사람들을 동요 시키고 불안케 하는 것 만이 아닌, 위로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출처-By John Piper. © Desiring God. Website: desiringGod.org
이 설교 시리즈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You must be born again” 설교 시리즈의 발췌 동영상을 한글 자막 처리해서 올리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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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존재

(J.C. Ryle, “거듭남”)

 

예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복음 3:3(우리말 성경)

 

 

 

 

거듭난 다는 것은 마치 새로운 존재가 되어……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마음,

새로운 관점,

새로운 생활의 법칙,

새로운 습관 과 소망,

새로운 사모함,

새로운 취미,

새로이 혐오 하는 것,

새로운 두려움,

새로운 기쁨,

새로운 슬픔을 가지게 되고;

싫어하던 것 들이 사랑스럽게 변하며, 사랑하던 것 들을 싫어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곧 올 새로운 삶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지게 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명확하게 다른 존재이며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그는 모든 것 에서 철저하게 다른 방향성과 성향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된 것 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심겨지는 새로운 법칙이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눈 먼 자의 눈이 떠지고;

듣지 못하는 자의 귀가 열리고;

말 하지 못하던 자의 혀가 풀리며;

손 과 발이 없던 자에게 선물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는 더 이상 그의 지체가 불의 의 도구와 종이 되는 것을 견딜 수 없게 되고-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며, 그의 지체는 올바르게 쓰여지기 시작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한 것을 너희는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요한복음 3:7 (우리말 성경)

 

 

원문 출처-http://www.gracegem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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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아더 목사님의 글: http://www.sfpulpit.com/2008/10/29/super-sized-saints/)

유럽에 있는 큰 성당들을 한 번 가보셨다면, 여러분들은 영적권위를 보여주는 빛나는 후광들과 함께 실제 크기보다 크게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레스의 사도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아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어떤 로마의 신들처럼 그려지거나, 대단한 대리석 동상들로 만들어 세워져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 또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듭니다. 사도들은 그저 12명의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이였습니다 (모든면에서). 우리는 그들이 정말로 누구였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것들이 그들을 사도로 불릴 수있게 하였던 것일가요? 진실은 그들만의 어떠한 타고난 능력이나, 뛰어난 재능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엘리트들이 아니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그 당시 갈릴리 사람들은 하층계급, 시골,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로 생각되어졌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은 막 시작되는 교회의 가장 기초가 되었던, 뛰어난 리더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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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자나 미친 자처럼 삶을 무의미하게, 나태하게 보내는 것

(Joseph Philpot, “The Soul’s Growth in Grace” 1837)

-(역자 주:”은혜 안에 서에 영적 성장” 1837)

 

한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났을 때, 그는 동시에 눈이 열리면서……

 하나님 과 자신

 공의 와 자책감

 능력 과 무능함

 거룩한 율법 과 깨어진 계율들

 영원함 과 시간

 창조주의 거룩함, 깨끗함 그리고 창조물의 불결함 등을 보게 됩니다.

 

그 는 이 모든 것 들을, 단순히 성경의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깨닫고 보기 시작합니다. 그가 보는 이것들이 그가 보낼 나머지 세월들, 영원 속에서 과연 그가 참된 행복을 아니면 비참한 고통을 누릴 지에 대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가 새로운 존재를 부여 받은 것 같고,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마치 누가 이제야 그를 오랜 잠에서 깨운 것 같고; 그가 큰 풍랑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돛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의 과거는 꿈 과 같았으며 이제 그 꿈이 끝났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는……

 나비를 쫓고 있었으며,

 비누 방울을 불고 있었고,

 별볼일 없는 물고기를 낚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데이지나 채집하고 있었고,

 카드로 집을 지으면서

 삶을 미련한 자나 미친 자처럼 허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 알게 됩니다.

 

그는 종교적인 직업에 깊이 종사하고 있었던 자 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집사가 됐을 수도 있고, 강대상 에 서기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리고 선택하심, 은혜에 대해서 시온의 언어로 그의 입술을 가득 채웠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가 이 모든 것들을 경험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알고 있었을 까요? 아무것도,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무지함에 대해 무지했고(모든 무지함의 종류 가운데서 가장 나쁜 것 입니다), 자신이 부요 하고 소유물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착각하고; 그가 가난하고, 소경 되었고, 벌거벗었고, 하찮고 비참한 죄인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 입니다.

원문 출처-http://www.gracegems.org

사진 출처-http://blog.naver.com/tanggully/7002610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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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y John Piper. © Desiring God. Website: desiringGod.org

지금부터 올릴 이 설교 시리즈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You must be born again” 설교 시리즈의 발췌 동영상을 한글 자막 처리해서 올리는 것 입니다.

 

      Credit: Lanech : 번역 안 되어 있음.

저는 더 이상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J.C Ryle “Are you regenerated?”)-(역자 주:”당신은 개심을 경험 했습니까?”)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14

 

개심한 자(중생의 씻음을 받은 자, 거듭난 자)는 거룩한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 전심을 다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심을 쏟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그 모든 것 들에서부터 피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의 목적 과 소망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영으로, 생각과 뜻과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고-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입니다.

개심한 자의 소원은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그리고 그의 모범으로 계속해서 보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친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님께서 어떤 것을 명령하시든지 따르는 것 입니다.

 

개심한자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개심한 자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서 없어 지지 않는 죄와 자신의 타락한 본성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무거운 짐 아래서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는 그에 속에 있는 악한 본성, 신념, 생각 들이 은혜와 끊임없는 분투를 하는 것을 느낄 것이고,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부족함 속에서도, 전체적으로, 그의 성향과 선호하는 것 들에서 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의 의지는 거룩하고

 그의 행실은 거룩하고,

 그가 즐거워하는 것은 거룩하고

 그의 모든 습관은 거룩합니다.

 

그 의 삶이, 비록, 마치 역 풍랑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처럼, 진로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방향이 틀어진다 할지라도, 그는 전반적으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갑니다-하나님을 향해서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 는 이전에 John Newton(존 뉴튼)과 같은 고백을 아마 하게 될 겁니다.”나는 원래 되어 있어야 될 내가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도 되지 못했습니다. 제가 바라는 다른 세상에서 변화되어 있을 저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저는 더 이상 이전에 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직 온전한 순종을 이루지 못하였더라도, 나에게 은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될 것 입니다. 비록 당신에게 내려진 은혜가 아직 약하고 완전하지 못할지라도, 당신이 진정으로 거듭난다면, 진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천국의 상속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Hopkins, 1670)

원문 출처-http://www.gracegem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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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번역

Which Jesus do you follow?
Which Jesus do you serve?
If Ephesians says to imitate Christ
Then why do you look so much like the world?

어떤 예수를 당신은 따라 갑니까?
어떤 예수를 예배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간다고 말했는데,
왜 당신은 세상과 이렇게 닮은 것 입니까?

Cause my Jesus bled and died
He spent His time with thieves and liars
He loved the poor and accosted the arrogant
So which one do you want to be?

나의 예수가 피 흘리고 죽었기에,
그는 도둑과 거짓하는 자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를 사랑하였고, 거만한자에겐 훈계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중 어떤 자가 되고 싶습니까?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Or do we pray to be blessed with the wealth of this land
Blessed are they that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Or do we ache for another taste of this world of shifting sand

심령이 약한자는 복이 있을 것이라 하는데.
아니면 우리는 이 땅의 재물로 복받기 위해 기도하고 있지 않나요?
의로움에 배고프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을 것이라 하는데.
한낱 모래알 같은 세상의 맛을 보기위에 몸부림치지 않나요?

Cause my Jesus bled and died for my sins
He spent His time with thieves and sluts and liars
He loved the poor and accosted the rich
So which one do you want to be?

나의 예수는 나의 죄때문에 피 흘리고 죽었기에
그가 도둑과, 창녀와 거짓하는 자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는 가난한 자를 사랑하였고, 부자를 혼내셨습니다.
당신은 이 중 어떤 자가 되길 원합니까?

Who is this that you follow
This picture of the American dream
If Jesus was here would you walk right by on the other side or fall down and worship at His holy feet

당신이 따르는 자는 누구입니까?
이 아메리칸드림의 모습입니까?
만약 예수님이 여기 있다면 당신은 그의 반대편에서 걸을 것입니까, 아님 그의 발에 엎드려 예배할 것입니까?

Pretty blue eyes and curly brown hair and a clear complexion
Is how you see Him as He dies for Your sins
But the Word says He was battered and scarred
Or did you miss that part
Sometimes I doubt we’d recognize Him

이쁜 파란눈과 곱슬거리는 갈색머리 그리고 깨끗한 얼굴
이게 그가 당신의 죄때문에 죽었을 때의 모습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는 밟히고 깨어졌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당신은 지나치신 것 입니까?
종종 저는 우리가 그를 알아볼수나 있을까 하고 의심합니다.

Cause my Jesus bled and died
He spent His time with thieves and the least of these
He loved the poor and accosted the comfortable
So which one do you want to be?

나의 예수님이 피 흘리고 죽으셨기때문에
그가 도둑과 세상에서 비참한 자들과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는 가난한자를 사랑하였고, 편안한자를 엄히 다루셨습니다.
이 중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Cause my Jesus would never be accepted in my church
The blood and dirt on His feet might stain the carpet
But He reaches for the hurting and despises the proud
I think He’d prefer Beale St. to the stained glass crowd
And I know that He can hear me if I cry out loud

나의 예수가 내 교회에서 절대로 받아드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의 발에 있는 피와 먼지가 카펫을 더럽힐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아파하는 자에 다가갔고, 자만하는 자를 싫어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는 Beale St. [블루스의 고장] 을 스테인글래스에 있는 군중들보다 더 좋아하실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는 압니다. 내가 크게 소리쳐 울 때 나를 들어 주실 것 이라는 것을요.

I want to be like my Jesus!!
I want to be like my Jesus!!
I want to be like my Jesus!!
I want to be like my Jesus!!

나의 예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나의 예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나의 예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나의 예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Not a posterchild for American prosperity, but like my Jesus
You see I’m tired of living for success and popularity
I want to be like my Jesus but I’m not sure what that means to be like You Jesus
Cause You said to live like You, love like You but then You died for me
Can I be like You Jesus?
I want to be like you Jesus!

미국 부귀영화의 상징물이 아닌, 나의 예수님처럼.
저는 성공과 부유함을 위해 사는 것에 매우 지쳐있습니다.
나의 예수처럼 되고 싶지만, 예수님 당신처럼 되고 싶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처럼 살고, 당신처럼 사랑하라고 하면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신 예수님처럼 될 수나 있을까요?
당신, 예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I want to be like my Jesus!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아랫글은 찰스 스펄젼의 Conversion 에 대한 내용입니다.
시간상 다 해석은 못하나,
제게 다가왔던 글귀만 해석을 해드리겠습니다.
정말….Amazing Grace..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그 은혜.
매일마다 경험하고, 매초마다 경험하길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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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부분 생략]

자신의 죄 때문에 신음하던 스펄젼, 영국의 한 콜체스터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있는
4-6명 모이는 Chapel에서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 잠시 머뭅니다. 그 조그마한 교회를 담당하시는 목사님께서는 눈보라 때문에 못 오시고.. “바보같이, 말을 더듬는 한 사람”(스펄젼을 인용) 이 강당에 올라섭니다. 그 사람이 성경의 한 구절을 읽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바라봐라, 눈을 들어보는 것은 그렇게 힘이 드는 일이 아니다. 손가락을 발을 움직이라는
소리도 아니다. 그냥..바라봐라. 사람은 대학을 가야지만 바라 볼수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너가 이세상에서 가장 바보일수도있겠지만, 그래도
바라 볼 수는 있지 않느냐? 아무나 다 바라 볼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꼬마아이도…
“나를 봐라.. 피를 흘리고 있는 나를 봐라.. 나를 봐라.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나를…
나를 봐라. 죽었고 무덤에 묻힌 나를.. 나를 봐라. 다시 부활하는 나를. 나를 봐라
천국으로 올라가는 나를. 나를 봐라. 아버지 오른손 옆에 앉아 있는 나를.
오..이 죄인이여. 나를 봐라! 나를 봐라!

[중간부분 생략]

하나님의 은혜는 이 은혜가 어디에서 필요로하는지 상관 안 합니다. 그저 그 은혜는
가서 (simply Goes), 구하고 (saves), 이끌어내고 (delivers), 그리고 하나님의 길을 걷게 합니다 (sanctifies). 하나님은 큰 공간을 가진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갖갖은 테크놀로지로 가득찬 교회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은혜는 주권적이며, 주위의 환경에 대해 전혀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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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원문: (www.banneroftrut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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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ISIT TO ARTILLERY STREET CHAPEL IN COLCHESTER

At first we couldn’t find it. We walked a long way down Artillery Street in a less than thriving area of Colchester, England. I was the guest of Graham Stevens and Abbeyfield Community Church, where he is the senior pastor. I had spoken there on 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February 23-24, 2008 ) and we took the opportunity that afternoon to go in search of the tiny chapel where Charles Spurgeon was converted.

Graham insisted he knew where it was, having been there before. But it had been a while and there was nothing in the area that alerted us to its presence. We passed several taverns where local soccer fans were overheard debating the matches of the previous day.

Finally, Graham remembered! It was easy to miss. Set back from the street amidst rows of attached homes, there was nothing to alert you to anything special other than a few small signs announcing that it was here that Charles Haddon Spurgeon was saved.

In one of the many magazines to which I subscribe there was recently an article describing, together with colour photos, several of the larger and more innovative church buildings here in the U.S. Trust me, Artillery Street Chapel in Colchester would never have qualified, then or now. There is still a very small congregation meeting there. Before Pastor Derek Hale arrived in 1991 it had three members. When he died of cancer in October of 1999 the church had grown to eight. By 2006 the membership had grown to fourteen.

The chapel is quite small, perhaps capable of holding seventy-five people. There is nothing to distinguish it physically, but spiritually, well, that’s another matter. As I walked in, I immediately noticed a large bronze plague on the wall which indicated that it was supposedly near that very spot where young Spurgeon sat on January 6, 1850, although he never planned on being there.

Spurgeon lived a few miles away in the village of Hythe. On that Sunday morning he was intent on attending another service, desperate as he was to be rid of the guilt of sin that burdened his soul. ‘I sometimes think’, wrote Spurgeon, ‘that I might have been in darkness and despair until now had it not been for the goodness of God in sending a snowstorm.’ The unexpected shift in weather forced him to seek shelter in what was then a nondescript Primitive Methodist chapel where no more than a dozen people were in attendance.

Said Spurgeon, ‘I had heard of the Primitive Methodists, how they sang so loudly that they made people’s heads ache; but that did not matter to me. I wanted to know how I might be saved, and if they could tell me that, I did not care how much they made my head ache.’

The minister was not present, evidently snowed in. Finally, a thin-looking man went up into the pulpit to preach. ‘Now, it is well that preachers should be instructed, but this man was really stupid.’ [Spurgeon's words, not mine!] ‘He was obliged to stick to his text, for the simple reason that he had little else to say.’ The text he selected was: ‘Look unto Me, and be ye saved, all the ends of the earth.’ ‘There was,’ Spurgeon thought, ‘a glimpse of hope for me in that text.’ The preacher continued: ‘Now lookin’ don’t take a deal of pain. It ain’t liftin’ your foot or your finger; it is just, “Look.” Well, a man needn’t go to College to learn to look. You may be the biggest fool, and yet you can look. A man needn’t be worth a thousand a year to be able to look. Anyone can look; even a child can look . . . “Look unto Me; I am sweatin’ great drops of blood. Look unto Me; I am hangin’ on the cross. Look unto Me; I am dead and buried. Look unto Me; I rise again. Look unto Me; I ascend to Heaven. Look unto Me; I am sittin’ at the Father’s right hand. O poor sinner, look unto Me! Look unto Me!”‘

After about ten minutes, ‘he was at the end of his tether,’ noted Spurgeon. ‘Then he looked at me under the gallery,’ [which by the way, is still there, but has long since been boarded up] ‘and I daresay, with so few present, he knew me to be a stranger. Just fixing his eyes on me, as if he knew all my heart, he said, “Young man, you look very miserable.” Well, I did, but I had not been accustomed to have remarks made from the pulpit on my personal appearance before . . . He continued, “and you always will be miserable – miserable in life, and miserable in death – if you don’t obey my text; but if you obey now, this moment, you will be saved” . . . I saw at once the way of salvation . . . Oh! I looked until I could almost have looked my eyes away. There and then the cloud was gone, the darkness had rolled away, and that moment I saw the sun; and I could have risen that instant, and sung with the most enthusiastic of them, of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nd the simple faith which looks alone to Him. Oh, that somebody had told me this before, “Trust Christ, and you shall be saved.” Yet it was, no doubt, all wisely ordered, and now I can say -

“E’er since by faith I saw the stream
Thy flowing wounds supply,
Redeeming love has been my theme,
And shall be till I die.”‘
Who would have expected that life-giving, sin-cleansing, soul-redeeming grace could be found in that little chapel? Who would have expected that God might use the solemn words of an incredibly simple and stammering man?

Grace cares little of where it is needed. It simply goes and saves and delivers and sanctifies. God doesn’t need a spacious sanctuary or multi-media technology or cutting-edge sound equipment. His grace is sovereign and not the least concerned about the surroundings in which it does its work.

Make no mistake about it. On that day the breath of God blew and a blizzard turned aside a searching young soul into an out-of-the-way chapel. That same breath confined a minister to his home and stirred an uneducated layman to ascend a pulpit. And that same, saving breath brought life to the dead, dry bones of a fifteen year old boy. And we are all the better for it. Spurgeon too.

<!–”

“우리는 “칼빈주의”라는 단어로 짧게 말해 사용합니다.
“칼빈주의”라고 불리우는 이 교리는 칼빈으로 부터 발생된 것이아닙니다;
우리는 이 것이 모든 진리를 세우신 그 위대한 분으로 부터 왔다는 것을 믿습니다.
아마도, 칼빈은 이 것의 대부분을 어거스틴의 글에서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거스틴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관점을 하나님의 영으로 부터 얻었습니다.
그의 관점은 곧 사도 바울의 글로써, 그리고 그 사도바울은 성령으로써, 또한 모든 기독진리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그 글들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이 가르쳤던 그 교리들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여 그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사실과 모든 것이 일치하는 단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교리를 다른 이름으로써 부를 수도 있습니다.” – 스펄전 (Spurgeon)

출처: http://www.reformedvoices.com/2008/07/its-not-about-calvin.html

성경 ,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쓰여진 것으로 완전하고 오류가 없으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말들과, 믿음 그리고 순종을 이야기한 책이다.

하나님 유일한 신이시고, 창조주 이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완전하신 분이시며 영원하신 분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사랑에 졌고, 경외해야 대상이며, 겸손하신 이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성부), 아들(성자), 그리고 성령으로 나타나셨다. 각각은 구별된 인격을 가지셨으나 같은 근본을 가지고 계신 (One) 하나님 이시다.

섭리(신의)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모든 일들을 계획하셨고 창조물들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신다. 그러나 죄에 관한 일에 대하여서는 하나님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시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행위도 하지 않으신다. 지적 생명체에 대한 마땅한 도리도 이곳에 포함된다..

선택 선택은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고 택하사 영생을 얻게 하신 소수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람 안에 어떠한 구원받을만한 일이 있어서 택함 받은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것이다. 택함을 흔히 칭의 또는 영화롭게 된다 라고 한다..

인간의 타락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처음엔 인간에게 죄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으로 인하여 인간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본래의 창조된 거룩함과, 의로움을 잃어버렸다. 결과로 아담( 사람) 후손들은 자연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들이 되었다..

중재자(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이시다. 그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율법을 완전케 하셨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사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다. 그는 죽은 3 만에 부활 하셨으며,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서 그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중보 하신다. 그는 유일한 중재자 이시며, 선지자 이시고, 대제사장이시며, 교회의 머리 되시고, 우주의 주관 이시다. 그는 죄가 없으신 완전하신 인간이다.

개심(regeneration) 개심이란,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은 마음의 변화로, 죄로 인해 죽어있던 죄인을 살리사,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고, 그의 본성이 변화되고, 사랑이 가득하고,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변화 이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이나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온전한 하나님의 그냥 주시는 특별한 은혜이다.

 두번째 부분인 교회에 대한 부분은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회심 회심이란 복음적인 은혜로 성령께서 마음 속에 내주하사 인간의 악한 죄를 알게 하시고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죄로 인해 슬퍼하고, 죄를 미워하며, 죄인 스스로를 미워하며 근신함으로 하나님의 좁은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믿음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을 말한다. 이것 또한 동일하게 성령을 인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모든 구원과 영생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칭의 칭의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없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한다. 은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혈의 은혜로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겸손하신 순종으로 인해 것이다. 믿는 자들을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얻게 된다..

성화 거듭나서 개심(regeneration)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화된다. 성화의 과정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게 되고 힘으로 말미암아 기꺼이 영생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게 된다.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자들은 결코 받은 은혜가 없어질 없다. 그것은 영원히 그들 안에 남을 것이다. 구원 얻은 성도도 죄를 지을 있다 죄악으로 인해 교회의 권징을 받을 수도 있고, 스스로 근신하며 속죄 수도 있다 하지만, 속에 계신 성령으로 인해 그들은 회개함의 자리에 다시 나아가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시고 마지막 날까지 지키신다.

어떤 분께서 이 영상을 번역/자막처리 해주셨습니다.
다른 웹사이트에서 발견하고 여기에다가 올립니다.

오늘의 포스트는 1884년도의 스펄전의 설교입니다. 비록 한세기가 지난 설교지만, 이 설교가 말하는 요점은 그때나 마찬가지로 오늘날에게도 관련있습니다.

여러분 (설교자) 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말고 다른 어떠한 좋은 방법을 사용하거나,  말할 가치있는 것이 없습니다.

최근 저는 어떤 한 집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 것은 너무나 작아, 어느 누군가도 그 설교자를 들으려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탓하고, 설교를 더 잘하려 하지 않고, 그 설교자는 그가 설교나 기도모임을 통해 잘하지 않는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클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한 교우가 와서 체스게임을 하면, 뭔가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지금 시도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서 영혼들을 구하려합니까? 그렇습니까? 우리가 빵을 대신할 어떤 것을 찾는 것입니까? 그리고 깨끗한 물보다 몸에 더 좋은 음료를 찾는 것입니까?…

시작과 끝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어떠한 다른 방법의 설교로써, 죄인들을 거룩함과 천국으로 오게 할 수 있다고 희망하는 것은 단순한 망상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다른 어떠한 이름도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고학력의 교육을 받은 사람과 상대한다면, 예수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 외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 사람들이 무지하고 지위가 낮다하여도, 예수를 설교하는 것 외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어떤 한 젊은이가 말을 했습니다, “어디 어디에서 저는 설교를 하러 갑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그 곳에 있습니까? 어떠한 교리가 그들에게 맞겠습니까?” 그러한 질문을 들으며, 나는 이러한 충고를 줬습니다, – “예수그리스도를 설교하십시요, 그 것이 그들에게 맞을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그들이 배운 사람들이라면, 이 것이 그들에게 맞을 것이고, 만약에 그 사람들이 배우지 못한사람이라더라도 이 것이 그들에게 맞을 것입니다 –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면 말입니다.”

당대 최고의 성경학자, Bengel 이 죽어가고 있을 때, 그가 어떤 한 젊은 신학생을 불렀습니다. 그에게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영적으로 갈급하기에; 나의 기분을 좋게할 어떠한 말을 해주오.” “선생님,” 학생이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나약한 자입니다. 당신과 같은 대단한 사람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너가 신학생이라면,” Bengel 이 말했습니다, “분명 너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있지 않느냐?; 기도하고 부담없이 말해줘라.” 그렇다면..” 그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었다는 것 밖에?” Bengel 이 말했습니다, “네 손을 줘라, 젊은이여; 그 말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간단한 복음의 말씀이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두려워하는 모든 이가 필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지금 당신 옆에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가 당신의 일터에 같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하십시요, 그리고 그의 영혼을 축복하십시요. 당신과 같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러한 생각으로 이해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당신 주변사람들을 위한 축복이 되길 기도합니다.

 

출처: http://www.sfpulpit.com/2008/09/29/let-us-preach-christ/#more-1415

거짓말#1: 성경을 믿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식을 죽여야 한다.

근대 교육과정에 있는 한가지 속설은 지적인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은 성경을 믿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믿는 것을 보게 된다. 정말로 지적인 사람은, 성경을 믿을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말씀을 통해 인간들에게 보이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는 것이다.

많은 초기의 미국 대학들이 바로 이러한 기초 위에 세워졌다. 하버드, 윌리암 & 매리, 예일, 프린스톤, 그리고 많은 고등교육 기관들의 중심 교육과정에는 성경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 여겨졌다. 1642년 하버드의 학교 룰을 보면, “…모든 학생들이 분명하게 교육되고,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인도하고, 그들의 삶과 학문의 끝이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되게 하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모든 학문과 배움의 근본 되신 그리스도를 그들의 근본으로 두게 하십시오.” 몇몇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학자들은 크리스천이 가지는 세계관이 가장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지성적으로 완벽한 관점이라고 인정한다.

사도바울, 성 어거스틴, 존 위클리프, 램브란트, 존 밀턴, 블래이스 파스칼, 요한 세바스챤 바흐, 로버트 보일, 조나단 에드워드, 마이클 파라데이, 제임스 클락 맥스웰, 케빈 경, 그리고 C.S. 루이스 등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과 믿는 것을 같은 것으로 여겼다.

현대에 와서 소위 ‘지적인 사람’ 들에게 성경이 이해되지 않고, 말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만함과 오만함이 진리를 그들에게서 가리워 버렸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 하게 되어.” (로마서 1:22)

학생들이여, 캠퍼스에서 스스로 지혜 있다 여기는 그런 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당장은 그것이 당신의 자존심을 높여 줄지 몰라도, 끝에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캠퍼스에서 사람들이 당신을 바보 같다고 하던, 현명하다고 하던 그것은 당신에게 아주 조금의 영향밖에 미치지 못합니다.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며 걸었고 당신의 목적과 열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참 지식이며, 인간의 존재이유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당신의 몸에 죄의 다스림을 받지 않게 하십시요” 설교 부분입니다.
www.recoverthegospel.com 에서 처음보고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I don’t know who made this video. I first saw it on the “www.recoverthegospel.com”.
Translated.

거짓말#2: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다른 종교들과 같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 사이에 외관상의 공통점은 존재한다 하지만, 핵심 교리에 있어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에 이르기 위     해서는 오직 한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스도가 말하기를, “내가 곧 길     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유일한 길임을 말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그리스도 자체가 기독교이다. 그리스도의 삶, 죽음, 죄인들을 위한 죽음에서의 부활이 기독교만의 독특한 교리이다. 세상의 다른 종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들은 인간중심적이다. 죄악 된 인간이 스스로의 선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손을 내미사 죄악 된 인간들을 의롭게 하셨고(칭의) 그 아들 그리스도의 피의 값으로 우리를 사셨다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를 타 종교와 같이 보는 것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를 잘못 보았거나 보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지금부터 올릴 개심에 관한 시리즈는 http://www.gracegems.org/ 에 있는 글들을 번역해서 올리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 성경에 대해 믿음의 선배들이 쓴 여러 많고, 좋은 글들이 있지만, 먼저 regeneration, 개심에 대해서 번역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새롭게 하심(개심, 중생의 씻음)은 성령님의 권능을 통하여서 죄인 의 의지 와 성향이 바뀌어 지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뜻하고, 또 한, 그 죄인의 모든 판단, 의견, 욕구, 행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던 모든 것에 서 에 전혀 다른 방향성 을 얻게 되는 것 을 말합니다.

 

“Regeneration is a change wrought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in the understanding, will and affections of a sinner; which is the commencement of a new kind of life, and which give another direction to his judgment, desires, pursuits, and conduct.”

두드리심! (다음은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 부분입니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 예레미야 31:3 (개역개정)

어느 날 밤에 주인님께서 율법의 엄격한 손을 가지고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그러자 그 문은 경첩까지 떨리고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모든 가구를 가지고 그 문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저 사람을 안 에 들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그 때 주인님은 떠나셨지만, 머지 않아, 그 분은 못이 박히셨던 그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다시 한번 두드리기 시작하셨습니다- 너무나도 부드럽게 그리고 상냥하게.

이번엔 문은 흔들리지 않고, 무척이나 이상하게도 열어지면서 그 앞에, 반항적이고 적대적이었던 집주인이 무릎을 끓고 손님을 기쁨으로 맞이 하였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당신의 그 두드림이 나의 성향을, 당신을 갈망하도록, 환영하도록 바꾸었습니다. 당신의 그 꿰 뚫린 손에 의해서 내 문에 피 자국이 나는 것을 전 상상 할 수도 없습니다.

전 굴복합니다, 당신에게 굴복합니다, 저의 마음은 이제 당신 것 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결국에는 승리합니다.

모세의 돌 판이 절대로 하지 못 할 일을,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꿰 뚫린 손으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효과적이고 충분한 부르심 입니다.
과연 제가 경험적으로 개심을 이해 한 것 입니까?
(more…)

경건한 자(의인)와 불 경건한 자(악인)의 차이점
(James Meikle, “나그네” 1758-6-14)

경건한 자와 불 경건한 자 사이에는-법칙과 행실 두 가지 모두에-아주 큰 차이 점이 있습니다.

경건한 자가 사모하는 것 은 정제되고, 엄정하고-그리고 그들의 소원은 숭고하면서도 고상합니다.
불 경건 한자의 성향은 타락하였고- 그 들이 바라는 모든 것 들은 천합니다.

 

                                                                                                                                                                         죄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견고하게 경건한 자의 안 속에 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불 경건한 자의 안 에는 죄가 왕 노릇 하며 영원토록 그 곳에 거하게 됩니다.
경건한 자의 속에는 은혜 와 죄가 서로 이 죄인의 주권을 차지 하려고 분투합니다.
불 경건한 자 안에는 죄가 통치하며, 분쟁이 없습니다.
경건한 자는 곧 올 세상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 경건 한 자는 불멸의, 영원의 실재 그리고 현실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경건한 자의 말에는 은혜가 스며들어가 있고,
불 경건한 자의 담화는 무미건조하고 무익하면서 허영심에 가득 차 있습니다.
경건한 자의 소망은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습니다.
불 경건한 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경건한 자는 세상 만물을 악용하지 않습니다.
불 경건한 자는 세상 만물을 악용하면서, 자기 자신도 잘못된 길로 빠져듭니다.

경건한 자는 매일마다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그 분 안에서 기뻐합니다.
불 경건한자는 행실로-”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다” 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마음에 품습니다.
경건한 자는 창조주를 이 세상의 어떤 것 보다 사랑하며 경배합니다.
불 경건한 자는 창조주 보다 ‘창조물을’ 더 사랑 합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사용하며, 부정한 행위에서 떠납니다.
불 경건한 자는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부정한 행위를 자신의 죄에 더합니다.
경건한 자는 주어진 시간을 충직하게 사용하고.
불 경건한 자는 시간을 하찮게 버립니다.

경건한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하나님의 교훈에 순종하면서, 깊이 연구합니다.
불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합니다.
경건한 자는 원수를 용서 하지만,
불 경건한 자는 원수를 위해 올무를 설치 합니다.
경건한 자는 보복 할 만할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손에, 뜻에 맡기지만,
불 경건한 자는 격정적으로 그리고 불 같은 마음으로 복수를 시도합니다.
경건한 자는 순결함을 사랑하고
불 경건한 자는 부정함 속에 파묻힙니다.

경건한 자는 자신의 상황에 만족 할 줄 알지만
불 경건한 자는 하루 종일 자기 자신의 욕망을 쫓아 살아갑니다.
경건한 자는 정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불 경건한 자의 마음은 마치 부정한 새로 가득 차 있는 새장과 같습니다.
경건한 자는 해방된 존재로 써 하나님의 길을 걸어 가고,
불 경건한 자는 죄의 종이며 노예입니다.

경건한 자의 마음은 성령님께서 통치 하시지만
불 경건 한 자의 마음은 사탄이 지배합니다.
경건한 자가 교제 하는 곳은 천국 이지만
불 경건한 자가 교제 할 곳 은 지옥 입니다.

이들의 삶의 법칙과 행실의 너무나도 큰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이들에 영원한 운명에도 큰 차이점이 있을 것 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그 분은 경건한 자에게는 천국의 복을, 가장 좋은 것을, 그리고 사악한 자에게는 벌을 경고하십니다.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언 14:32(개역개정)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 아래 축복을 받았고,
불 경건 한자는 하나님의 법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경건한 자는 기쁨으로 구원의 샘에서 물을 얻게 되겠지만,
불 경건 한자는 전능자의 분노를 마시게 될 것 입니다.
경건한 자는 형언 할 수 없고 가늠 할 수도 없는 귀중한 약속에 속하게 될 것 이지만,
불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모든 경고와 진노 하심에 속하게 될 것 입니다.

천국이 경건한 자의 궁전이 될 것입니다!
지옥은 바로 불 경건한 자의 감옥이 될 것 입니다!
경건한 자가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할 것이라면,
불 경건한 자는 영원한 어두움으로 내어 쫓길 것입니다.

요컨대, 경건한 자와 불 경건한 자는 그들의 삶이 다르고, 죽음에서 나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법칙 안에서,
행실 안에서,
선택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 안에서,
생각 안에서,
벗 안에서,
모든 말 가운데서,
두려워하는 것 안에서,
소망 하는 것에서,
죽음 안에서,
그리고 영생 에서 말입니다!

원문 출처-http://www.gracegems.org/

(more…)

거듭난 자(개심한 자), 그들의 열망과 삶 그리고 마음의 성향은?

(Hannah More, “기독교의 본질적인 법칙”)

 

 

인간은 성령님의 역사 하심을 통해서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 역사 하심을 통해서 인간의 희망 과   기호는 달라지게 되며, 전혀 새로운 열망함을 얻게 된다……

 그의 어두운 지성과 지식에 빛이 비추어지고,

 그의 반항적인 태도와 뜻은 정복되며,

 그의 난잡한 욕망들은 제거된다;

 그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서 알게 되며,

 그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정제되며,

 그의 기질은 정화된다:

 그의 모든 소망두려움 은 진실되고 합당한 방향성을 얻게 된다.

 천국이 그의 소망함의 대상이 되며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 터의 영원한 분리가 그의 두려움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향했던 그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변모된다.

 하등의 지적인 능력들과 재능은 새로이 사용되고,

 감각과 의식 이 더 높은 수준의 방향성을 얻게 된다.

 

그리고, 내면의 모든 본질적인 구조와 기질이 고결한 성향으로 변화된다……

내면의 의지와 목적이, 더 고귀한 목표를 향해서;

그의 포부는, 더 숭고하게 변화되고;

흔들리던 갈망함 들은 확립된 대상을 가지고;

일정치 않던 목적들은 자리가 잡힌다;

그리고 그의 실의에 빠져있던 마음은 확실한 도피처를 얻게 된다.

 세상을 경배했던 그의 마음은 이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분투하기 시작한다.

원문 출처-http://www.gracegems.org/  (more…)


“There are only two kinds of persons: 
          
those dead in sin and those dead to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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