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are only two kinds of persons: 
          
those dead in sin and those dead to sin.”

 

 

거듭난 자(개심한 자), 그들의 열망과 삶 그리고 마음의 성향은?

(Hannah More, “기독교의 본질적인 법칙”)

 

 

인간은 성령님의 역사 하심을 통해서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 역사 하심을 통해서 인간의 희망 과   기호는 달라지게 되며, 전혀 새로운 열망함을 얻게 된다……

 그의 어두운 지성과 지식에 빛이 비추어지고,

 그의 반항적인 태도와 뜻은 정복되며,

 그의 난잡한 욕망들은 제거된다;

 그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서 알게 되며,

 그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정제되며,

 그의 기질은 정화된다:

 그의 모든 소망두려움 은 진실되고 합당한 방향성을 얻게 된다.

 천국이 그의 소망함의 대상이 되며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 터의 영원한 분리가 그의 두려움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향했던 그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변모된다.

 하등의 지적인 능력들과 재능은 새로이 사용되고,

 감각과 의식 이 더 높은 수준의 방향성을 얻게 된다.

 

그리고, 내면의 모든 본질적인 구조와 기질이 고결한 성향으로 변화된다……

내면의 의지와 목적이, 더 고귀한 목표를 향해서;

그의 포부는, 더 숭고하게 변화되고;

흔들리던 갈망함 들은 확립된 대상을 가지고;

일정치 않던 목적들은 자리가 잡힌다;

그리고 그의 실의에 빠져있던 마음은 확실한 도피처를 얻게 된다.

 세상을 경배했던 그의 마음은 이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분투하기 시작한다.

원문 출처-http://www.gracegems.org/  (more…)

거짓말#2: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다른 종교들과 같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 사이에 외관상의 공통점은 존재한다 하지만, 핵심 교리에 있어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에 이르기 위     해서는 오직 한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스도가 말하기를, “내가 곧 길     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유일한 길임을 말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그리스도 자체가 기독교이다. 그리스도의 삶, 죽음, 죄인들을 위한 죽음에서의 부활이 기독교만의 독특한 교리이다. 세상의 다른 종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들은 인간중심적이다. 죄악 된 인간이 스스로의 선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손을 내미사 죄악 된 인간들을 의롭게 하셨고(칭의) 그 아들 그리스도의 피의 값으로 우리를 사셨다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를 타 종교와 같이 보는 것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를 잘못 보았거나 보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거짓말#1: 성경을 믿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식을 죽여야 한다.

근대 교육과정에 있는 한가지 속설은 지적인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은 성경을 믿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믿는 것을 보게 된다. 정말로 지적인 사람은, 성경을 믿을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말씀을 통해 인간들에게 보이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는 것이다.

많은 초기의 미국 대학들이 바로 이러한 기초 위에 세워졌다. 하버드, 윌리암 & 매리, 예일, 프린스톤, 그리고 많은 고등교육 기관들의 중심 교육과정에는 성경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 여겨졌다. 1642년 하버드의 학교 룰을 보면, “…모든 학생들이 분명하게 교육되고,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인도하고, 그들의 삶과 학문의 끝이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되게 하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모든 학문과 배움의 근본 되신 그리스도를 그들의 근본으로 두게 하십시오.” 몇몇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학자들은 크리스천이 가지는 세계관이 가장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지성적으로 완벽한 관점이라고 인정한다.

사도바울, 성 어거스틴, 존 위클리프, 램브란트, 존 밀턴, 블래이스 파스칼, 요한 세바스챤 바흐, 로버트 보일, 조나단 에드워드, 마이클 파라데이, 제임스 클락 맥스웰, 케빈 경, 그리고 C.S. 루이스 등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과 믿는 것을 같은 것으로 여겼다.

현대에 와서 소위 ‘지적인 사람’ 들에게 성경이 이해되지 않고, 말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만함과 오만함이 진리를 그들에게서 가리워 버렸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 하게 되어.” (로마서 1:22)

학생들이여, 캠퍼스에서 스스로 지혜 있다 여기는 그런 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당장은 그것이 당신의 자존심을 높여 줄지 몰라도, 끝에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캠퍼스에서 사람들이 당신을 바보 같다고 하던, 현명하다고 하던 그것은 당신에게 아주 조금의 영향밖에 미치지 못합니다.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며 걸었고 당신의 목적과 열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참 지식이며, 인간의 존재이유입니다.

경건한 자(의인)와 불 경건한 자(악인)의 차이점
(James Meikle, “나그네” 1758-6-14)

경건한 자와 불 경건한 자 사이에는-법칙과 행실 두 가지 모두에-아주 큰 차이 점이 있습니다.

경건한 자가 사모하는 것 은 정제되고, 엄정하고-그리고 그들의 소원은 숭고하면서도 고상합니다.
불 경건 한자의 성향은 타락하였고- 그 들이 바라는 모든 것 들은 천합니다.

 

                                                                                                                                                                         죄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견고하게 경건한 자의 안 속에 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불 경건한 자의 안 에는 죄가 왕 노릇 하며 영원토록 그 곳에 거하게 됩니다.
경건한 자의 속에는 은혜 와 죄가 서로 이 죄인의 주권을 차지 하려고 분투합니다.
불 경건한 자 안에는 죄가 통치하며, 분쟁이 없습니다.
경건한 자는 곧 올 세상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 경건 한 자는 불멸의, 영원의 실재 그리고 현실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경건한 자의 말에는 은혜가 스며들어가 있고,
불 경건한 자의 담화는 무미건조하고 무익하면서 허영심에 가득 차 있습니다.
경건한 자의 소망은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습니다.
불 경건한 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경건한 자는 세상 만물을 악용하지 않습니다.
불 경건한 자는 세상 만물을 악용하면서, 자기 자신도 잘못된 길로 빠져듭니다.

경건한 자는 매일마다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그 분 안에서 기뻐합니다.
불 경건한자는 행실로-”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다” 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마음에 품습니다.
경건한 자는 창조주를 이 세상의 어떤 것 보다 사랑하며 경배합니다.
불 경건한 자는 창조주 보다 ‘창조물을’ 더 사랑 합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사용하며, 부정한 행위에서 떠납니다.
불 경건한 자는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부정한 행위를 자신의 죄에 더합니다.
경건한 자는 주어진 시간을 충직하게 사용하고.
불 경건한 자는 시간을 하찮게 버립니다.

경건한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하나님의 교훈에 순종하면서, 깊이 연구합니다.
불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합니다.
경건한 자는 원수를 용서 하지만,
불 경건한 자는 원수를 위해 올무를 설치 합니다.
경건한 자는 보복 할 만할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손에, 뜻에 맡기지만,
불 경건한 자는 격정적으로 그리고 불 같은 마음으로 복수를 시도합니다.
경건한 자는 순결함을 사랑하고
불 경건한 자는 부정함 속에 파묻힙니다.

경건한 자는 자신의 상황에 만족 할 줄 알지만
불 경건한 자는 하루 종일 자기 자신의 욕망을 쫓아 살아갑니다.
경건한 자는 정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불 경건한 자의 마음은 마치 부정한 새로 가득 차 있는 새장과 같습니다.
경건한 자는 해방된 존재로 써 하나님의 길을 걸어 가고,
불 경건한 자는 죄의 종이며 노예입니다.

경건한 자의 마음은 성령님께서 통치 하시지만
불 경건 한 자의 마음은 사탄이 지배합니다.
경건한 자가 교제 하는 곳은 천국 이지만
불 경건한 자가 교제 할 곳 은 지옥 입니다.

이들의 삶의 법칙과 행실의 너무나도 큰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이들에 영원한 운명에도 큰 차이점이 있을 것 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그 분은 경건한 자에게는 천국의 복을, 가장 좋은 것을, 그리고 사악한 자에게는 벌을 경고하십니다.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언 14:32(개역개정)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 아래 축복을 받았고,
불 경건 한자는 하나님의 법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경건한 자는 기쁨으로 구원의 샘에서 물을 얻게 되겠지만,
불 경건 한자는 전능자의 분노를 마시게 될 것 입니다.
경건한 자는 형언 할 수 없고 가늠 할 수도 없는 귀중한 약속에 속하게 될 것 이지만,
불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모든 경고와 진노 하심에 속하게 될 것 입니다.

천국이 경건한 자의 궁전이 될 것입니다!
지옥은 바로 불 경건한 자의 감옥이 될 것 입니다!
경건한 자가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할 것이라면,
불 경건한 자는 영원한 어두움으로 내어 쫓길 것입니다.

요컨대, 경건한 자와 불 경건한 자는 그들의 삶이 다르고, 죽음에서 나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법칙 안에서,
행실 안에서,
선택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 안에서,
생각 안에서,
벗 안에서,
모든 말 가운데서,
두려워하는 것 안에서,
소망 하는 것에서,
죽음 안에서,
그리고 영생 에서 말입니다!

원문 출처-http://www.gracegems.org/

(more…)

두드리심! (다음은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 부분입니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 예레미야 31:3 (개역개정)

어느 날 밤에 주인님께서 율법의 엄격한 손을 가지고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그러자 그 문은 경첩까지 떨리고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모든 가구를 가지고 그 문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저 사람을 안 에 들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그 때 주인님은 떠나셨지만, 머지 않아, 그 분은 못이 박히셨던 그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다시 한번 두드리기 시작하셨습니다- 너무나도 부드럽게 그리고 상냥하게.

이번엔 문은 흔들리지 않고, 무척이나 이상하게도 열어지면서 그 앞에, 반항적이고 적대적이었던 집주인이 무릎을 끓고 손님을 기쁨으로 맞이 하였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당신의 그 두드림이 나의 성향을, 당신을 갈망하도록, 환영하도록 바꾸었습니다. 당신의 그 꿰 뚫린 손에 의해서 내 문에 피 자국이 나는 것을 전 상상 할 수도 없습니다.

전 굴복합니다, 당신에게 굴복합니다, 저의 마음은 이제 당신 것 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결국에는 승리합니다.

모세의 돌 판이 절대로 하지 못 할 일을,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꿰 뚫린 손으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효과적이고 충분한 부르심 입니다.
과연 제가 경험적으로 개심을 이해 한 것 입니까?
(more…)

지금부터 올릴 개심에 관한 시리즈는 http://www.gracegems.org/ 에 있는 글들을 번역해서 올리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 성경에 대해 믿음의 선배들이 쓴 여러 많고, 좋은 글들이 있지만, 먼저 regeneration, 개심에 대해서 번역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새롭게 하심(개심, 중생의 씻음)은 성령님의 권능을 통하여서 죄인 의 의지 와 성향이 바뀌어 지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뜻하고, 또 한, 그 죄인의 모든 판단, 의견, 욕구, 행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던 모든 것에 서 에 전혀 다른 방향성 을 얻게 되는 것 을 말합니다.

 

“Regeneration is a change wrought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in the understanding, will and affections of a sinner; which is the commencement of a new kind of life, and which give another direction to his judgment, desires, pursuits, and conduct.”

존 파이퍼 목사님의 “당신의 몸에 죄의 다스림을 받지 않게 하십시요” 설교 부분입니다.
www.recoverthegospel.com 에서 처음보고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I don’t know who made this video. I first saw it on the “www.recoverthegospel.com”.
Translated.

오늘의 포스트는 1884년도의 스펄전의 설교입니다. 비록 한세기가 지난 설교지만, 이 설교가 말하는 요점은 그때나 마찬가지로 오늘날에게도 관련있습니다.

여러분 (설교자) 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말고 다른 어떠한 좋은 방법을 사용하거나,  말할 가치있는 것이 없습니다.

최근 저는 어떤 한 집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 것은 너무나 작아, 어느 누군가도 그 설교자를 들으려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탓하고, 설교를 더 잘하려 하지 않고, 그 설교자는 그가 설교나 기도모임을 통해 잘하지 않는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클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한 교우가 와서 체스게임을 하면, 뭔가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지금 시도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서 영혼들을 구하려합니까? 그렇습니까? 우리가 빵을 대신할 어떤 것을 찾는 것입니까? 그리고 깨끗한 물보다 몸에 더 좋은 음료를 찾는 것입니까?…

시작과 끝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어떠한 다른 방법의 설교로써, 죄인들을 거룩함과 천국으로 오게 할 수 있다고 희망하는 것은 단순한 망상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다른 어떠한 이름도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고학력의 교육을 받은 사람과 상대한다면, 예수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 외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 사람들이 무지하고 지위가 낮다하여도, 예수를 설교하는 것 외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어떤 한 젊은이가 말을 했습니다, “어디 어디에서 저는 설교를 하러 갑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그 곳에 있습니까? 어떠한 교리가 그들에게 맞겠습니까?” 그러한 질문을 들으며, 나는 이러한 충고를 줬습니다, – “예수그리스도를 설교하십시요, 그 것이 그들에게 맞을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그들이 배운 사람들이라면, 이 것이 그들에게 맞을 것이고, 만약에 그 사람들이 배우지 못한사람이라더라도 이 것이 그들에게 맞을 것입니다 –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면 말입니다.”

당대 최고의 성경학자, Bengel 이 죽어가고 있을 때, 그가 어떤 한 젊은 신학생을 불렀습니다. 그에게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영적으로 갈급하기에; 나의 기분을 좋게할 어떠한 말을 해주오.” “선생님,” 학생이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나약한 자입니다. 당신과 같은 대단한 사람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너가 신학생이라면,” Bengel 이 말했습니다, “분명 너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있지 않느냐?; 기도하고 부담없이 말해줘라.” 그렇다면..” 그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었다는 것 밖에?” Bengel 이 말했습니다, “네 손을 줘라, 젊은이여; 그 말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간단한 복음의 말씀이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두려워하는 모든 이가 필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지금 당신 옆에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가 당신의 일터에 같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하십시요, 그리고 그의 영혼을 축복하십시요. 당신과 같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러한 생각으로 이해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당신 주변사람들을 위한 축복이 되길 기도합니다.

 

출처: http://www.sfpulpit.com/2008/09/29/let-us-preach-christ/#more-1415

어떤 분께서 이 영상을 번역/자막처리 해주셨습니다.
다른 웹사이트에서 발견하고 여기에다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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